베트남 국경일(독립기념일)
베트남에는 구정과 신정을 제외하고 4일의 공휴일이 있습니다.
건국시조인 헝왕의 제삿날인 음력 3월 10일과 미국이 철수한 4월 30일 사이공해방일, 5월 1일 노정절, 그리고 독립기념일이다.
독립기념일은 베트남사람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프랑스 지배를 받던 베트남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어 독립을 맞는듯 했으나
곧바로 아시아를 장악한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이에 호치민은 1941년 베트민을 결성하여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해나갔습니다.
기근에다 일본에 전쟁 군수물자와 식량을 대느라 무려 15년동안 200만명이 굶어 죽는 고초를 당했습니다.
베트남은 1945년 8월 일본히로시마 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일본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베트민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봉기를 시작해 8월 혁명을 성공시켰습니다.
일본이 항복하고 물러가자,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도가 스스로 퇴위하고
베트민은 일본으로부터 독립과 왕조로부터의 해방을 한꺼번에 쟁취했습니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 임시정부를 대표해서 호치민은 하노이 바딘광장에서 독립선언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창건을 선언했습니다.
모든 국민의 기원이였던 독립, 많은 희생과 많은 고통으로 하루 하루 독립을 위해 싸웠을
그 국민들에게 어찌 이 날의 의미를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대단한 베트남입니다.
바딘광장에서 호치민은 "베트남의 모든 인민은 모든 신체적, 정신적 힘을 모으겠다고,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기 의해
생명과 재산을 희생하겠다고 결의해야 합니다"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자유와 독립을 위해 생명과 재산을 희생한다....베트남 국민들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생명과도 바꾼 그 독립이니 당연히 남다른 의미가 있겠죠.
호치민은 9월 3일 10대 정책을 발표했으며 "기근해소"와 "문맹률 해소"를 강조했습니다.
1945년 여름과 가을동안 베트남 북부와 중부에는 기근으로 백만명이상이 사망해, 당히 호치민은 국외에도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또한 프랑스 교육정책으로 인민의 문맹율이 90%에 달해 문맹률 해소를 위해 노력해 1년뒤에는 200만명 이상이 문맹에서 벗어낫다고 합니다. 많은 과제중에서도 이처럼 민생의 현안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지금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 베트남에서는 호치민을 "호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호치민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이야기 들이 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 하나는 호치민이 각 성을 방문할때, 성주가 호치민이 온다는 소리에 음식을 거하게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에 호치민이 화를 내고 이후 부터는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 평생을 희생하신 호치민을 어찌 국민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호치민을 찬양하고 그리는 노래가 참 많이 방송되네요. 존경스럽습니다.